납작 개구리 사건
잉그리드 올손 글
샬롯 라멜 그림
황윤진 옮김
우리나비

 


도로 위를 뛰어다니던 개구리가 있었어요. 그 개구리는 자동차 바퀴에 깔려 납작하게 되었죠. 오세는 납작해진 개구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어요. 그리고 친구 말테에게 이 개구리를 발견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자꾸 지금은 안된대요.  오세는 지금 이 개구리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몹시 궁금한 지금의 마음을 나누고 싶은데 말이죠. 말테에게까지 못 간다면 엄마가 지금 오세의 마음에 생긴 호기심과 개구리에 관한 관심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나중에 하라고 하며 집안일만 하고 계시네요.

오세의 납작 개구리에 관한 이 이야기 샘이 공유되고 공감 받지 못하자 오세는 엉뚱하게 폭발해버리고 말았어요. 방으로 들어가 녹색 천을 다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만 거예요. 엄마에게 주의를 듣고 시무룩한 오세에게 친구 말테가 찾아왔어요. 저녁시간이라 오래 있지 못했지만 말테가 메고 온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잠시 나눈 이야기였지만 오세는 충분해 보였어요. 말테가 간 뒤 엄마도 오세의 납작 개구리에게 관심을 보였어요. 오세는 뭐라고 반응했을까요?

최근 저의 딸아이를 통해 어떤 감동을 공유하는 것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딸아이가 들고 온 것은 납작 개구리는 아니었고, 친구들과 영화를 본 이후의 이야기였어요. 같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낀 감동이 꽤나 컸는데 아무도 그 여운을 나누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거 같아서 그 시간이 굉장히 쓸쓸했다고 해요. 분명 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즐거웠어야 하는데  마음이 꽉 채워지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도 그것에 관한 감정과 느낌을 공유하거나 공감 받지 못했을 때 오는 공허함을 느낀 것 같습니다. 비단 영화 감상뿐만이 아니겠죠. ‘납작 개구리 사건’처럼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이의 사건이 엄마에게 혹은 친구에게 그다지 중요치 않은 일로 여겨지고 대화거리가 되지 못했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아이의 감정이 서운함도 있겠고 그림책 속 오세처럼 분노로 표현이 되기도 하겠지요.
당장에 아이의 물음에 정답을 얘기해주진 못하더라도 그 순간 반응해주고 다시 되물어봐주는 몇 초라도 할애해 공유한다면 아이의 이야기 샘과 감정이 막히지 않고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림책을 보며 오세의 마음을 따라가보니 감정이란 것은 순간의 흔적을 남기며 흘러가는 강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뒤늦게 달려가 다시 잡아 올 수 없는 감정 주머니를 공감 받으며 꽉 채우지 못하면 결핍을 반복해서 느끼고 어느새 공감을 위한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유능하진 않지만, 아이가 만들어 보내는 감정의 흐름을 공유하고 인정해주며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엄마가 되어보자 다짐하며, 아이가 훗날 ‘우리 엄마는 나의 마음을 채우는 엄마였어’라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자 쓴 산딸기(아이윙 그림책 리뷰어)

 

 

 

이제 십대가 된 11살 딸과 '언니처럼'을 지향하는 5살 딸을 키우는 두 딸의 엄마이자 말없는 남자의 아내인 여자사람 입니다. 김승연 작가님의 <여우모자>로 그림책이 어른에게 주는 감성과 위로를 알게 되었구요. 동네의 닮고 싶던 언니가 그림책과 친구로 지내는것을 알고 더 깊이 알고 싶어진 친구이자 취미가 된 그림책의 새친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