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질 수 없어
마르 파봉 지음
고양이수염 옮김
유지현 해설
이마주


 

참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그림책이 건네는 메시지와 그림이 적당한 곳에서 멈추지 않고 흩어진 마음을 끝까지 끌어안고 있거든요. 적어도 제게는 그랬어요.
‘가치’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쓸모,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하여 지니게 되는 중요성 등이 있는데요, ‘가치’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될 때 머리로 이해하는 ‘가치’와 가슴으로 이해하는 ‘가치’에 차이를 두고 싶지 않지만, 때로 가치의 다름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막히는 대화를 할 때는 결국 그것을 이해하는 기관이 달리 발달해 있었나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유행인지는 몰라도 서점의 책 제목들을 보면 세상이 말하는 가치가 어느새 많이 바뀌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만은 꼭 이래야 하지.”라는 것이 있어요. 이를테면 “신발이나 양말만큼은 두 짝이 있어야 하지.” 같은 것 말이죠.
그런데 이 또한, 이마저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림책이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은 찢어진 신발의 가치에 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짝을 잃은 신발의 가치에 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한 소녀가 쇼윈도의 신발을 한참 바라봅니다. 남색의 메리제인 슈즈예요. 얼마나 예쁜지 그림을 보던 저도 한참을 만지작거렸답니다. 어울리는 양말과 함께 신은 소녀 발에 꼭 맞는 신발은 제 발을 넣어 신고 싶을 만큼 예뻤어요.
그 예쁜 신발을 신고 소녀는 춤을 추었어요. 그리고 가는 곳마다 이 신발을 신고 다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신발 한 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고 말았어요. 두 짝이 아니면 신을 수가 없는 신발을 보며 소녀는 시무룩해졌습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이제 이 신발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집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예상 가능한 신발과 신발일지 모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이다음부터는 그림책 작가의 몫이 아니라 결핍을 인식한 나, 완전하지 않은 나,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흩어진 우리의 어떤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찢어진 신발은 쓰레기장에 남겨지고 안 찢어진 한 짝은 누군가의 자루 속으로 다시 옮겨져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한 짝인 신발은, “짝이 없는 신발인 나는 아무것에도 쓸 수 없는데 대체 어쩌려고 나를 씻기고 말려서 양말 한 짝과 함께 옮겨 가는 것일까.” 합니다. 때가 되어 한 짝인 신발과 양말이 그들이 충분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누군가에게 꼭 맞는 신발이 되어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고, 그 결여된 존재가 한 다리를 잃은 어린 소녀의 곁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결말에서, 온전치 않음의 아름다움을 보았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맺기에는 찢어진 신발 한 짝이 내내 제 마음에 걸려 이 마음을 남겨 둔 채 글을 쓸 수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12살 딸아이의 눈을 통해 보게 된 마지막 그림으로 인해 이 그림책은 지금의 나와,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나와 닮은 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이야기로 남았답니다.

소녀는 잠이 들고, 한 짝의 신발과 양말은 그 곁에 머무르며 그림책이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뒤이어 해설과 작가의 말이 있어서 마지막 이야기가 그림으로 연장되어 있을 거라고 보지 못한 제 실수였지만, 내내 마음에 치이던 시간을 더 큰 환희로 바꾸어주었기에 오늘의 발견이, 늦은 발견이라 제게 더 아름다웠다고 생각해요. 진짜 마지막 장을 만날 때까지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음을 여러분도 함께 느껴보기를 바랍니다.

그 누구도, 어떤 삶도 꽃피우지 못할 존재는 없습니다. 결핍, 의도치 않은 흩어짐이 아무도 대신하지 못할 존재의 가치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자신이 세상 다수의 기준으로 모나고, 못났고, 부족하게 느껴질지라도 찌그러진 채 살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의 결핍은 부족한 채로 적당히 끝맺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다른 자리를 찾는 힌트예요.

다만 “나는 신발이야. 나는 발이 아니면 제자리가 아니야. 두 짝이 아니면 무용해. 여기에서 이것이 아니면 내가 아닌 거야.” 하며 스스로 단정 짓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저도 어쩌면 꽤 오랜 시간 그렇게 명명된 틀에 저를 맞춰 지냈던 것 같아요. 신발이라는 이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신발로서만 살아야 한다고 말이죠. 다수의 기준에 맞춰 결핍을 채우고 모난 부분을 둥글게 깎느라 나 자신의 고유함 놓치고, 나에게 들리는 내면의 소리도 놓치며 살아온 시간도 있었답니다.

어떤 기준에서는 부족하고 모난 내가, 사실은 그렇게 모난 틈에 들어가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나’도 될 수 있어요. 내 삶의 의미를 나로 두고 찾아가는 ‘가치’, 이름과 세상이 명명한 자리에 맞춰 살아가는 ‘가치’ 때에 따라 둘 다 중요하지만, 새로운 이름의 내가 되어야 할 때, 삶의 가치를 스스로 부어 주어야 할 때, 이 책은 가장 중요한 것을 건넬 수 있을 것 같아요.

짝이 없는 신발의 한 짝, 찢어진 신발의 새로운 자리를 보며 그 누구도 단정 짓지 못할 삶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온전치 못한 것의 온전하게 됨을 응원하며...




필자 소개 : 모자 쓴 산딸기
이제 십대가 된 11살 딸과 '언니처럼'을 지향하는 5살 딸을 키우는 두 딸의 엄마이자 말 없는 남자의 아내인 여자사람입니다. 김승연 작가님의 <여우 모자>로 그림책이 어른에게 주는 감성과 위로를 알게 되었고요. 동네의 닮고 싶던 언니가 그림책과 친구로 지내는 것을 알고 더 깊이 알고 싶어진 친구이자 취미가 된 그림책의 새 친구입니다.